
[삼국지 디비기] (1) 현재 우리가 가진 <삼국지>의 이미지
2010. 07. 09. 금요일
아홉친구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삼국지>와 <삼국연의>의 표기에 대해 말해보자. 우리가 흔히 언급하는 <삼국지>는 <삼국연의>이고, 진(晉)나라 진수(陳壽)의 <삼국지>와 구별해야 함은 이젠 상식이다. 중국에서는 이 둘의 표기가 확실히 구분돼 나관중의 소설은 <삼국연의>로만 표기하고 있지만, 우리는 일본의 영향을 받아 <삼국지>란 명칭을 더 친근하게 여긴다.
중국은 중국이고, 우리는 우리다. 하지만 이 글에선 워낙 많이 거론될 것이므로, 좀더 편하게 둘을 구분지을 필요가 있겠다. 그러니 사서(史書)를 지칭할 경우에는 저자명을 넣어 ‘진수의 <삼국지>’식으로 표기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역사소설을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경우엔 <삼국연의>로 표기하도록 하겠다. 물론 이렇게 한다고 해도 저자별로, 또 장르별로 <삼국지>란 이름이 혼용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혼란은 감수하여야겠다.
21세기가 된 오늘날, 어렸을 적 읽었던 웬만한 교양서와 소설들은 ‘구시대적인’ 이미지에 갇혀버렸다. 아이들은 책 자체를 읽지 않는다. ‘책은 곧 공부’라는 등식은 갈수록 굳어져서, 시험 성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책은 마니아 혹은 전공학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세상이 돼버렸다.
공부하기 싫어 소설책을 탐독했던 예전 일화들은, 요즘 아이들로서는 ‘1988년에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렸단다’란 말을 국사책에서나 확인하듯, 현실과는 거리가 멀게 받아들인다. 삼촌과 아버지뻘 용자들이 무협지와 빨간책을 숨겨 보았을 나이에, 현대의 아이들은 크레이지아케이드, 마비노기, 스타크래프트, 던전앤드래곤, 나아가 서든데스와 모던워페어를 하며 현질과 헤드샷을 배우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놀았던 시절은 흘러간 옛노래가 됐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텍스트 문화가 몰락해가며 고전들이 더 이상 읽히지 않는 와중에서도, 유독 <삼국연의>만은 아직 생명력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삼국연의>는 조선시대에도 유행이었고, 유학자들이 이를 잡설로 취급하였음에도 인기가 시들지 않았음을 보면, 이야기 자체가 가진 힘이 시대를 막론하고 유지된다고 볼 수 있는 면이 있다(사실 성리학의 교조 격인 주희(朱熹)도 삼국연의 빠돌이였다). 그러나 이 땅에서 <삼국연의>가 왜 인기 있었는지를 말하기 전에, 우선 최근의 시대상 변화를 언급하는 게 먼저겠다. 21세기의 <삼국연의>는 분명히, 새로운 장르인 ‘게임’ 때문에 또다른 생명력을 얻었으므로.
1990년대 초반 일본 KOEI사에서 나온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삼국지>는 당시 컴퓨터의 보급과 맞물려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물론 제값 주고 산 사람이 없다는 면에서 꼭 자랑할만한 일은 아니다). 하드디스크조차도 드물던 시대에, 추억의 5.25인치 플로피디스크를 밤새 돌렸던 사람이 필자만은 아니리라.
게임 <삼국지>의 인기는 곧바로 다른 형식의 게임들로 이어졌다. KOEI 에서도 공명전, 영걸전, 조조전 등의 외전격 게임들을 내놨고, CAPCOM은 일본 만화의 원화를 기초로 한 횡스크롤 액션 게임 <천지를 먹다> 시리즈로 인기를 끌었으며, 콘솔 게임기가 보급된 후엔 <삼국무쌍> 시리즈가 그 뒤를 이었다. 시리즈별로 기복은 있었지만 <삼국지> 게임류는 거의 어느 것이나 관심을 얻었고, 오리지널 <삼국지> 시리즈도 근 20년의 세월을 견디면서 11편까지 출시됐다. 게임 <삼국지>의 역사만을 제대로 조망하다가는 그것만으로 족히 방대한 레포트가 작성될 테니 일단 여기서 줄이자.
중요한 건, 게임 장르로 옮겨진 <삼국연의>가 사람들에게 어떤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주었는가다. 그것은 KOEI의 <삼국지>가 채택한 핵심 요소인 동시에, 기존의 <삼국연의> 독자들이 줄곧 가지고 있던 의문을 반영한 것이었다. 한 마디로, 그것은 ‘수치화’다.

<삼국연의>에는 장수와 모사들을 서로 비교 가능한 장면들이 있긴 하다. <삼국연의>의 표현대로라면 주유는 제갈량보다 분명히 멍청하다. 그리고 여포는 관우, 장비보다 강하다. 하지만 주유와 사마의 중에선 누가 더 똑똑할까? 전위와 마초가 붙는다면? 서로 마주할 기회가 없었던 장수들은 상대적인 비교를 통해서 짐작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물론 이런 비교가 <삼국연의>의 이해에는 별 도움이 안되지만, 그런 쓸데 없는 정보를 궁금해하는 것도 호사가들로선 자연스러운 심리였다.
KOEI의 <삼국지>는 그 심리를 제대로 현실화했다. 가령 삼국지 2라면 여포는 무력 100, 관우 장비 조운이 99고 오나라에선 태사자가 95로 제일 세다는 식이다. 제갈량의 지력이 100인데 사마의 98, 주유는 96. 조조는 위대하게도 전부 90점대를 넘는 수치를 보여주지만 매력만큼은 유비가 최고일 것이다.
KOEI <삼국지>를 플레이하면 주요 장수들의 능력치를 달달 외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플레이어는 <삼국연의>의 인물들을 서열화하게 된다. 비록 당신이 신흥 군주로서 여포와 태사자 중 누구를 휘하에 두고 누구의 목을 벨 것인가는 선택할 수 있지만, 그 와중에 ‘둘 사이에는 5의 무력 수치 차이가 있다’고 인식하는 데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시리즈가 거듭되며 각종 능력 기준과 병과가 새로 생겼고 능력치도 조정됐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수치를 통해 인물들을 서열화한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제는 이 수치화 인식이 마냥 옳지 않다는 것도 많이 알려졌다. 하지만 KOEI <삼국지>가 처음 보급됐을 때의 충격은 대단했다. 오늘날 그 수치를 믿지 않더라도, 그로 인해 생겨난 서열화의 인식은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한족(漢族) 위주의 역사관으로 인해 <삼국연의>의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이 굳어져왔고, 그로 인해 곽가와 주유보다 제갈량이 부각되었던 것이 지난 1800년 동안 지속됐다면, 미래의 <삼국연의>와 거기서 파생된 장르들은 20세기 말의 게임이 안착시킨 ‘서열화’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차피 <삼국연의>도 각 시대의 관점이 개입되고 종합된 소설이었다. 여포가 유비 관우 장비를 동시에 맞상대했다는 구절이 정사(正史) <삼국지> 어디에 있었는가. 그러한 판타지는 반동탁 연합군에서 잡졸에 불과했던 유비 세력을 돋보이게 만들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며,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삼국연의>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무력 최고는 여포’라는 서열화의 판타지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면, 당연히 미래의 <삼국연의>에도 그러할 것이다.
물론 미래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최소한 현재 우리가 인식하는 <삼국연의>는 게임이 가져다 준 서열화가 상당히 개입해 있다. 젊어서는 <삼국연의>를 읽으며 야망을 품지만 늙어서 읽으면 교활해진다는 얘기가 꽤 오랫동안 전해져 왔는데, 오늘날에는 이를 약간 수정해야 할 듯하다. ‘젊어서는 능력치만 놓고 인물을 알게 되지만, 늙어서는 정사와 비교하여 환상에서 깬다’라고 말이다. 그러고 보면, 근대화 이후 한국에서의 <삼국연의>는 사실상 일본이 만든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KOEI의 게임이 최근의 쇼크라면, 그 이전까지의 세계관을 담당한 이는 요시가와 에이지(吉川永治)였다.

요시가와 에이지(1892~1962)는 <삼국지(三國誌)> 외에도 <대망(大望)> <미야모토 무사시>와 같은 대하역사소설로 국민적 인기를 얻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요즘에도 만화 <배가본드>가 <미야모토 무사시>를 원작으로 하고 있으니 영향력이 대단하다 하겠다.
최근에는 <삼국연의>의 내용과 역사적 사실의 차이점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어떤 면에서는 KOEI의 게임도 여기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삼국지> 게임은 <삼국연의>의 생명력을 연장시키기도 했지만, 어차피 게임이기 때문에 그 내용이 실제 있었다고 믿기보다는 ‘허구가 많이 들어갔겠지’라고 미리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임 때문에 <삼국연의> 혹은 정사 <삼국지>에 관심을 갖게 된 ‘젊은 피’들은, 그래서인지 자신의 기존 인식이 깨어지더라도 그다지 충격을 받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이전, 요시가와 에이지의 <삼국지>를 먼저 접한 사람들은 달랐다. 우리나라에 박종화, 이문열, 김구용, 황석영, 김홍신, 장정일 등의 <삼국지>가 있지만, 그중 선두주자라 할 수 있는 박종화의 <삼국지>는 1968년 초판이 나왔고 이후 신문연재가 되었으며, 이에 비해 요시가와 에이지의 <삼국지>는 1939~1943년에 연재되었다. 이문열의 <삼국지>가 1988년 발간됐으니, 생각해보면 꽤 오랫동안 요시가와 에이지의 <삼국지>가 횡행하다가 박종화 판본이 겨우 여기에 맞섰던 셈이다.
사실 요시가와 에이지와 비슷한 시기에 구보 박태원이 <삼국지>를 연재하여 번역을 마쳤으나 한국전쟁으로 책이 발간되지 못했고, 이후 그가 북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2008년에서야 그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1955년에 한번 발간됐다고 하는데 그 흔적은 찾기 어렵다. 김동리와 황순원이 공저한 작품, 또 양주동이 쓴 작품이 있다는데, 읽어보진 못했지만 평으로는 요시가와 에이지 판본을 옮긴 수준이라고 하니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중국에서 일컫는 <삼국연의>는 보통 청나라 강희제 때 모종강(毛宗崗)이 편집한 판본을 지칭한다. 여기서는 원래 유비, 관우, 장비가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요시가와 에이지는 여기에 덧붙여 유비가 노모를 위해 차(茶)를 사려다 장비 관우 등과 얽히는 대목을 창작으로 집어넣었다. 대사는 전부 현대식으로, 원본의 어투를 굳이 살리지 않는다. 게다가 제갈량이 죽으면서 이 책은 끝난다. 허구가 너무 많은데다 삼국의 운명도 채 다루지 않은 <삼국지>라니, 뭔가 이상하다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요시가와 에이지의 허구는 너무 빼어났다. <삼국연의> 자체도 독자의 감정 호소에 의존하는 작품이지만, 요시가와 에이지의 <삼국지>가 주는 호소력은 대단하다. 필자가 처음 이 책을 읽은 게 11살쯤 되었을 때였다. 홀딱 빠져 읽다가 지쳐 잠에 들려면 천장에서 글자들이 아롱거렸다. 사마의(司馬懿) 부자가 제갈량의 계략으로 협곡에 갇히고, 화공에 불길이 옷깃까지 타 들어와 꼼짝없이 죽을 운명이건만, 하필 비가 내리는 바람에 살아 돌아가자 제갈량이 “아아, 정녕 뜻은 하늘에 있는가”라며 탄식하던 장면과 대사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만약 요시가와 에이지판 <삼국지>를 읽지 않은 분이 있다면 반드시 읽어보라고 하고 싶을 정도다. 상황과 인물을 생생하게 묘사하여 독자를 끌어들이는 능력에선 어떤 작가도 요시가와 에이지를 능가하지 못한다. 때문에 요시가와 판본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좀처럼 기존의 인식을 바꾸기가 어려웠다.
많은 사람들이 제갈량 신격화, 조조 폄하 등의 혐의를 중국의 역사적 배경에서 찾는다. 하지만 공간의 범위를 우리나라에 한정짓는다면,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삼국연의>의 내용과 중국의 역사가 그러한 ‘왜곡’의 기초를 마련한 게 사실이나, 정작 우리가 읽은 건 한문으로 된 <삼국연의>가 아니라 번역본이며, 그 중심에 요시가와 판본이 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서는 또한 상당수가 이문열의 <삼국지>를 통해 <삼국연의>를 접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문열이 그토록 조조의 재평가에 골몰했던 것도 이유가 있다. 앞서 살펴본대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진 <삼국연의>의 인물 인식은 그러니까 요시가와 에이지 판본에 의존해 있었을텐데, 그 속의 ‘제갈량 신격화’ ‘조조 폄하’야 말로 엄청난 호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처럼 요시가와 판본을 첫 <삼국연의>로 접한 사람들로서는, 제갈량이 조금만 더 살았다면 삼국통일을 이뤘을 것이라 굳게 믿었을 것이다. (요시가와 판본이 모종강 판본보다 더 조조를 폄하하지는 않았지만, 워낙 제갈량이 뛰어나게 묘사되므로 상대적인 폄하가 일어난다고 봐야겠다.)

정리하자면 우리가 가진 <삼국연의>의 인식에는, 요시가와 에이지의 창작과 게임 장르의 ‘서열화’로 대표되는 일본식 해석이 매우 크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요소가 가진 공통점은 바로 ‘인물 중심’이다. 애당초 <삼국연의> 자체가 사건보다 인물의 일화를 강조하는 성격이 있지만, 일본에서는 이 ‘인물 놀이’의 엔터테인먼트를 더욱 강화시켰다는 얘기다. 때문에 <삼국연의>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역사적 교훈은 갈수록 뒷전으로 밀리거나, 아예 없는 걸로 치부되기도 한다.
이게 일본의 잘못이란 얘기는 아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조선 중기에도 <삼국연의>의 폐해를 지적하는 상소가 있었다 하니, 옛 사람들도 <삼국연의>를 오락으로 보았을 뿐 그 이상의 의미부여는 하지 않았던 듯하다. 또한 <삼국연의>는 완성작이 전해져온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많은 가필과 보충이 있었던 소설이니, 등장인물을 생생하게 묘사한 요시가와의 작업은 왜곡이 아니라 오히려 뛰어난 재창조로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일제시대를 거치며 한글이 보급된 이후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오랫동안 일본에서 채색된 <삼국연의>에 의존했다고 봐야겠다. 비록 몇몇 선구자들이 있었으나, 중국의 모종강 판본을 기초로 한 <삼국연의>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건 길어야 20년 정도다. 모종강 판본을 기초로 하여 역사서와 대조하는 최근의 경향은, 일본 식의 자의적 해석에 반하여 역사적 맥락을 중시하는 태도로 볼 수 있겠는데, 그 점에서 김운회 교수의 비평은 읽을 가치가 있다. 그 내용이 중국의 해석을 넘어섰다고 보긴 어렵지만.
일본은 <삼국연의>를 현대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그것을 엔터테인먼트로 확장하는 데 대단한 솜씨를 발휘했다. 아마도 그 극단에는 장수들의 ‘모에화’가 있을 것이다. 요시가와 에이지의 <삼국지>도 원본에 비하면 장중한 기품은 덜하다. 기본적으로 ‘당대 독자의 입맛’을 고려한 결과다. 그것이 오늘날에는 ‘당대 소비자의 입맛’에 맞추어지면서, 여성 캐릭터의 비중이 늘어나다가 급기야 성별까지 아예 바꿔버리는 시도에 이르렀다.

일본 게임과 만화에 등장하는 삼국연의의 인물 변화상
오른쪽 두 번째가 모에 캐릭터로 묘사된 <연희무쌍>이다.

그러나 중국은 이렇게 할 수가 없다. 이어지는 글에서 다루겠지만, <삼국연의>의 인물과 사건들은 엄연히 그들의 조상이며 역사다. 함부로 훼손할 수가 없다. 한국 일본에서 사서와 <삼국연의>가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한다면, 중국에서는 그 사서가 과연 정확한지를 연구한다. 자기네 역사기 때문에 입장이 다르다. 따라서 안 그래도 허구투성이인 <삼국연의>의 자의적 재해석은 있을 수가 없고, 비교적 엄숙주의적인 태도가 취해진다. 역시 나중에 다루겠지만, ‘품삼국(品三國)’ 강의로 유명해진 이중텐(易中天) 교수의 글조차도 ‘역사를 희화화했다’며 비판하는 게 중국의 현실이다.
우리의 좌표는 중국과 일본의 중간 어딘가일 것이다. 우리는 <삼국연의>의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즐기긴 하나 극단적이지 않고, 원본에 충실하려 하나 엄숙하지는 않다. 현재로서는 우리가 내세울만한 어떤 성과물이 보이지는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서 언급한대로 우리 작가들이 본격적으로 모종강 판본에 손대기 시작한 건 오래지 않다. 요시가와 에이지의 저작이 60년 전이란 걸 감안하면 이제 막 시작한 셈이다.
그렇게 일본의 해석이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에도, 일부 독자들은 스스로 진수의 <삼국지>와 <후한서>를 뒤져보고 있었다. 중국에서 학자들이 연구하는 역사적 고찰을 이 땅에서는 재야 고수들이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의 발랄한 재창작에 기운 <삼국연의> 인식이 더욱 편향되지 않았던 데엔, PC통신 시절부터 활약했던 재야 고수들의 역할이 나름 있었다고 생각한다.
허구와 역사의 비교 작업을 한갓 오타쿠들의 취미 놀음이라고 치부하거나, 그래봤자 중국의 연구를 수입 적용한 정도에 불과하다고 미리 한계를 지을 필요는 없다. 남 베끼기에 급급했던 시절이 기억에 생생하건만, 한국 가요와 드라마가 외국에 수출되어 한류 붐을 일으키리라곤 누구도 상상 못하지 않았던가. 문화의 힘이 어떻게 발현될지 아무도 모르던 20년 전의 그때가, <삼국연의>의 해석에 있어선 바로 지금일지 모르며, 아무 짝에도 쓸모없이 보이는 이러한 작업이 훗날 어떤 결과물이나 가치로 재발견될지 역시 모르는 일이다.


아직까지는 일본이 구현한 <삼국연의>의 세계에 우리가 경도돼 있는 게
사실이다.
필자는 감히 새로운 해석을 덧붙일 내공이 없다. 이어질 글은 그러니까 <삼국연의>를 해석하는 현재의 경향들을 전하고, 인물 중심의 인식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루어진 역사적 교훈을 참고하여 인물들을 재평가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자료가 동원되면서도 가장 졸렬한 글이 쓰여질 것 같다. 그런 긴장감 때문에 이토록 재미없는 서론을 쓰고 말았다. 다음에 이어질 중국의 최근 경향 이야기에선 좀더 화끈하게… 쓸 수 있을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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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초차.. 아깝..;;
본문은 아니고, 요시카와 에이지 설명 부분의 오류 지적 -
쌍팔년대 해적판으로 나온 '대망'(원제 ; 도쿠가와 이에야스)은 야마오카 소하치의 작품입니다.
'대망'을 요시카와 에이지의 작품으로 오해하는 경우를 종종 봤는데..
해적판(세로쓰기) 시절 32권으로 출간된 '대망'에는
야마오카 소하치의 '도쿠가와 이에야스'20권 + 같은 작가의 외전격인 '다테 마사무네', '야규 무네노리' 5권에다가..
요시카와 에이지의 '미야모토 무사시'7권이 임의로 합본되어 있었기에
아마도 보다 많이 알려진 '요시카와 에이지'의 작품으로 오인받고 있는듯 합니다.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가 일본인들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은영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것도 나름 흥미로운 주제..
건 그렇고-
'중원은 잃었지만 주인공은 우리'
이른바 '정통론'이랄까.. 저야 뭐 '유비빠'임
기대 만빵입니다. -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진다고 했는데, 이상하게 왜 패배국인 촉의 중심으로 소설이 쓰여졌는지
궁금하긴 했다. 역사에 대해 자세히 모르니 패스..
어쨋든, 삼국지와 관련된 만화책 중에 '창천항로' 라는 만화책이 있는데
조조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데, 읽다보면 어느새 조조의 매력에 빠져버린다.
내가 알기론 작가가 재일교포라고 하던데, 완결을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확실한 사실은 아니다. 루머일 수도 있다.)
다행히도 다른 작가가 완결을 했으니 가까운 대여점에 가면 빌려볼 수 있을 듯 하다.
적절하게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장면이 많으니 더욱더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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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북쪽 이민족이라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으므로, 한족 중심의 중원문화를 찬탈한 이민족이라는 해석이 가해져서 뭘 하든 악역으로 나오게 됩니다. 이에 반대로 유비는 전통 한족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한족인 제갈공명의 도움을 받아 중국 패권을 노린다는 점에서 훨씬 긍정적으로 비치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작품 내내 유비와 한 황실간의 관계가 강조되고 (황숙이죠?) 있는 게죠. 또, 유비의 인덕에 휩쓸리면서 어떻게 보면 무능한 군주상은 성리학적 질서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군주상입니다. (성리학에서는 요, 순임금처럼 하늘의 뜻을 받들어 덕을 베푸는 것을 군주의 최고 덕목으로 보고 있습니다.) -
기자분이 진짜 궁금해하시는 것 같아서 진.연희무쌍 플레이한 사람으로서 의견을. 일단 위에 다른 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누님캐라서 글래머인 게 맞는듯함다. 이 회사, 좀 어리다 싶은 애들은 전부 완전평면으로 만들고 누님캐는 전부 전신흉기로 만드는 이상한 습관이 있는 듯. 여기에 더해서 진.연희무쌍은 캐릭터를 지나치게 많이 만든 관계로 여캐 공략에 들어갈 때 2~3명씩 세트로 묶이는 경우가 있는데(유비&관우/하후돈&하후연/여포&진궁...), 엄안은 황충과 콤비로 묶였더랬죠. 이미 황충은 딸내미까지 있는 전신 흉기캐로 확정된 뒤니까(노장 > 나이많음 > 누님 > 쭉쭉빵빵) 여기에 콤비로 묶이는 엄안도 같은 계열로 나아간 걸로 보입니다. 세트라고 해서 꼭 몸매까지 통일하라는 법은 없지만 시나리오 방향을 그쪽으로 잡은 듯. 삼국연의 자체는 잘 몰라서 엄안이 황충과 관련이 있는 인물인건지 나이대가 비슷한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참,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연희무쌍 게임 자체가 완전히 이름만 가져다 쓴 수준에 가까워서 재해석이라고 부르기에도 꽤 거부감이 있다는 것. 엄안이 그려진 짤방의 왼쪽 두번째 캐릭터가 방통이니까 이건 뭐... 그나마 일기당천이.... ...오십보 백보인가... -
정비석 삼국지는 원래 5권 양장으로 딴데서 나왔었는데 (현재 소장) 고려원에서 손자병법으로 히트를 치고 난 후 자유부인부터 초한지까지 복간하면서 다시 나온 겁니다. 그리고 그 즈음에 박종화 삼국지도 어문각에서 복간되고 하면서 중국 정통(?) 부협지 전성시대가 오고 이게 김용시리즈로 연결... 이문열은 나중에 막차탄거죠.
저도 집에 세로쓰기 삼국지가 있어 그냥 보다가 나중에 손자병법 읽고 초한지 읽고 다시 보려니까 저자가 정비석이더라는...
어쨌거나 삼국지 여러가지 보면 다 조금씩 다릅니다. 죽은 공명이 사마의 혼내고 나면 급 마무리... 이런 경우도 있고 강유가 끙끙대다 촉나라 망하는데까지인 경우도 있고, 삼국 통일될때까지인 경우도 있고... 그래서 여러 판본을 보게되는 부작용이... -
요시카와 에이지가 썼던 거로구나.... 장비가 707시장군....??? 읽은 지가 오래 되어서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다....
이문열이는 언급하기도 싫은 애고.... 읽지도 않았다.
나는 박종화 삼국지가 제일 좋더라.
정비석 삼국지나 황석영 삼국지 등은 제목만 들었을 뿐 읽어 볼 의욕이 나지 않았다.
고우영 삼국지는 참 재미있게 보았더랬다..... 나중에 고우영 화백의 다른 작품들을 읽었는데, 다 같은 캐릭터를 썼더라. 제갈량이 일지매가 되고, ..... 불만은 전혀 없다. 그 중에 홍길동전을 좀 다르게 해석한 게 있었는데, 아직도 '똥길이 홍'이라는 이름이 기억난다. 특히 김동길 영감이 망가진 이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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