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너뷰] 김영하 인터뷰

인터뷰 당일, 빠리의 뤽상부르그 정원에서 한참 햇볕을 쬐다가 왔다는 그는 늘 혼자서 다닌다고 했다. 키우고 있는 고양이처럼 비밀스럽게, 자신만의 공간에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홀로 긴 이국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 우리말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팟 캐스트는 그런 면에서 정말 좋은 자료에요.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을 아주 즐겁게 듣고 있습니다.
미국에 자주 갔고, 작년에는 뉴욕이나 밴쿠버에서 좀 길게 머무를 기회가 있었어요. 그들이 얼마나 팟 캐스트를 효율적으로 쓰고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장비도 없이 컴퓨터의 내장 마이크로 그냥 시작했는데 지금은 장비도 좀 갖추고, 참여해주는 친구들도 있고 해서 질적으로 좀 더 나은 팟 캐스트를 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참 자유롭잖아요. 라디오와는 다르게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매체이기 때문에 시간제한도 없고요. 듣는 사람도 가장 편한 시간에 원하는 대로 들을 수 있으니까요. 해외에서도 들을 수 있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장르에요.

늘 첨단에 서 있는, 앞서가는 작가라는 느낌이 있어요. 각종 문학상을 휩쓸고 영화의 원작으로 사용되고, 이런 걸 다 떠나서요. 예를 들면 저는 초기작을 좀 나중에 읽었습니다. <검은 꽃>을 가장 먼저 읽었어요. 초기 단편들은 제가 읽을 당시, 발표된지 1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90년대 작품이란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저에게 묻습니다. 한국영화 정말 대단하다. 이렇게 영화를 잘 만드는 애들이 이야기가 없을 리가 없지. 소설 좀 추천해 줄래? 이렇게요.
그리고 전 김영하를 추천합니다. 98년도부터 번역, 소개 되었기 때문에 구하기 쉽고, 강렬한 단편이고, 어떤 국적의 독자들에게도 쉽게 다가선다는 장점이 있는 게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인 것 같아요. 그리고 책을 읽은 친구들은 좀 더 깊이 있는 질문을 해옵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궁금해 하고, 알고 싶어하는 거에요.
영화와 소설을 비교하면서 두 장르의 우월성을 따지는 건 좀 우스운 일이지만 사람들을 좀 더 오래 사로잡고 기억 속에 오래 남는 건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98년도부터 번역이 되어 해외에 소개되었는데, 번역에 대한 견해가 궁금합니다.


번역이 되어 다른 독자들에게 읽힌다는 게 사실 상당히 어려운 일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한국 작가들만 번역되는 경우가 드물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어딜 가나 사람들은 번역된 작품을 많이 읽지 않아요. 프랑스 사람들은 프랑스 작품을 우선으로 읽고요. 우리나라만 좀 특별하게, 번역된 작품들을 많이 읽는 거에요. 미국은 더 심하고 독일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나라도 들여다보면 번역된 프랑스 작가들도 많이 읽히고, 두터운 독자층을 가진 작가들은 몇 명 되지 않아요. 번역은 되지만 많이 읽히고 독자들을 많이 가진 작가들은 손에 꼽으니까요. 해외에 나와서 독자들을 만나고 그러는 것도 저는 이런 쪽으로는 운이 좋은 것 같아요.
98년에 처음 프랑스어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번역출간될 거란 전화를 받고 저는 누가 저한테 장난전화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의 관심사, 생활 태도, 어떤 기질, 쓰는 글의 소재, 이런 것들이 전 세계적인 흐름과 좀 맞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코스모폴리탄 적이고, 유난히 저는 현대적인 이슈에 민감하고 관심이 많아요. 어떤 면에서 세상이 어느 곳에서는 사는 게 좀 비슷해져 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세계적으로 동시 개봉되는 블록 버스터 영화를 보고, 누구나 다 아이폰을 쓰고, 대기업 브랜드의 제품을 소비하죠. 그런 것들이 잘 맞아떨어진 게 아닐까 싶어요.
번역된 작품을 보면 '헤어진 옛 애인이 데려온 아이'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죠. 반갑긴 한데, 잘 모르겠고, 확실한지도 긴가 민가 하고. 엄마는 확실한데 아버지가 확실하지 않은 그런 아이 같아요. 번역된 작품을 가진 작가는 자기 작품의 문 앞을 지키는 파수꾼이 된 것 같다고 이야기 했잖아요.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는 이제 제 손 밖의 일이 된거에요. 내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딘가 낯익은 무언가가 번역된 작품이에요. 번역이 되어 외국에 소개된다는 건 한편의 소설이 한 나라의 문화와 그 밖의 것들을 다 가지고 넘어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는 것과는 다르게 상당히 깊이 있게 세계를 이해하게 해줍니다.

그런 면에서는 제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번역이 된다는 건 의미있는 일이에요. 오르한 파묵이 이라크의 작가였다면, 미국은 이라크를 쉽게 침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라는 말이 있어요. 오르한 파묵은 이스탄불의 풍경을 소설을 통해 섬세하게 그려냈습니다. 터키라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 그들의 삶을 그려냈어요. 이라크는 석유는 있지만 터키와는 달리 그런 세계적인 레벨의 작가를 보유하고 있지 않아요. 그런 나라에는 인간이 살고 있지 않은 것처럼,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어요. 사담 후세인이 지배하는 악의 제국처럼 느껴지는 거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 삶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으니까요.
반면에 남미의 마르케스 같은 작가의 경우는 그 반대에요. 거기 사람들은 괜히 친구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곳에선 마술적인 일이 일어나고, 유쾌하고도 어딘가 신비롭고 이상한 사건들이 태연하게 일어날 것 같아요. 그렇게 친숙한 느낌을 주는 것이 책이 하는 일이에요. 그러니까 외국의 독자들을 만난다는 건 정말 새로운 일이죠.
세실 바즈브로(포럼에 참가한 프랑스 작가)가 칵테일에서 그러더군요. <빛의 제국>을 읽었는데,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요.
어지간한 프랑스 사람들은 <올드 보이>와 <괴물>를 위시로 한 한국영화를 다 알고 있고, 이제 한국이라고 하면 거기가 어디야? 이렇게 답하는 사람은 드물죠. 그런데 오리엔탈리즘, 익조티즘이라고 해야 할까. 동양 문학에 대해 아직도 그런 선입견이 있어요. 서울은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한옥에서 빠져 나와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다닐 것 같고.,,
아직도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불리고요. 타고르가 그렇게 쓴 게 대체 언제적 이야기인데.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서울은 그런 곳이 아니잖아요. 입으로 백번을 이야기 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아요. 직접 가보거나, 아니면 소설을 하나 읽는 게 빠르죠. 서울에서는 사람들이 이런 음악을 듣고 맥주를 마시고, 이렇게 사는 구나. 알게 되니까요.
서울의 젊은이들이 사는 모습은 베를린, 빠리, 뉴욕이나 별로 다르지가 않아요. 실업문제, 전망이 없다는 문제, 미래와 앞날이 없다는 문제에 고민하고, 그런 개인 문제에 따른 고독감에 괴로워해요. 다들 너무 외롭죠. 기술의 발전 속도는 너무 빠른데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요.
첨단 기술은 더 앞서나가고 있는데 소통하는 방식은 더욱 서툴어요. 아이폰도 있고, 홈페이지, 메신저, 이메일도 다 있지만 막상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이 좋은 건 다 아는데 그걸 누구나, 언제나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좋은 건 알지만 가질 수는 없는 박탈감을 겪으면서 살아가요.
삶은 눈부시게 편리해졌지만 그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걸지도 모릅니다.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의 질 역시 발전했는가는 의문이죠.
지구 어디서나 다들 똑같이 살아가요. 그렇지 않나요? 어딜 가나 사람 사는 건 다 비슷비슷하잖아요. 콜드 플레이 듣고, 하이네켄 마시고, 콜라 마시고..치밀하게 훈련 받은 남파 간첩 조차도 남한에 10년을 사니까 하이네켄을 마시는데요.

전공이 경영학과에요. 작가로서는 드문 프로필인데요. 남다른 현대성, 보편성을 가지는데 경영학 전공이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을까요?
부모님은 졸업 후에 돈을 벌기를 바라고 안정된 직장을 갖기를 바랐는데. 전 막상 대학교에선 열심히 공부를 안 했어요. 전공이 영향을 끼쳤다기 보다도, 제 기질적으로 특이한 것이 있어요.
처음엔 제가 정말 되게 평범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처음에 작가가 되려고 마음 먹었을 때에는 나같이 평범한 사람은 작가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심각한 우울이나, 병적인 고독, 여러가지 것들, 좀 과시적이고 현시적인 작가들이 흔히 가지고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것들이나, 심한 멜랑꼴리, 골방에 틀어박혀 고뇌하는 것.. 이런 것들을 가져야 작가가 되는 게 가능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히 시키는 대로 다 하고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자라왔기 때문에 혹시 작가가 되지 못하는 게 아닌가 감수성이 부족한 게 아닌가 싶었어요. 다른 작가들은 정말 감수성이 넘쳐 나는 거에요. 90년대 중반 제가 등단할 때 작품들을 되짚어 보면 지금과는 또 스타일이 많이 달라요. 그런데 내가 갖고 있는 것이 문학계에는 오히려 특이한 것이 더라고요. 저는 무척 건조한 사람이고 신념, 감정에 별로 휘둘리지 않아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팩트를 중시하고요. 자기를 속이거나 과장하거나 잘 그러지를 않아요. 진실을 진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다른 작가들 보면, 술이나 담배 이런 것들을 자유롭게 즐기는 반면, 저는 굉장히 금욕적이에요. 저는 사람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고 그런 특이한 면이 있어요. 뭐 지금이야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다 받아들이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지만요. 처음 문단에 나왔을 때만 해도. 문장들이 좀 달랐어요. 감상적인 문학이 한국 문학의 중요한 흐름이거든요. 아버지 어머니 찾고, 시골 나오고 고향 나오고 슬픈 이야기 많았잖아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나왔을 때 사람들이 충격을 받은 거죠. 한국에서도 충격적이었지만 번역되어 출간되는 나라마다, 지금도 모든 나라에서 충격을 받아요. (프랑스의 편집자는 논란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의 소설 제목을 의역해서 출간했다.)
제가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유별난 어떤 작가로서의 특성이 된 것 같아요. 건조하고 냉정한. 태도랄까 문학하는 사람, 예술가에게는 참 드문 특성이거든요. 문학은 마음의 뭐랄까… 제가 고등학교때까지만 해도 프란체스코의 수도사가 되고 싶었는데요.
세례 명 있으세요?
안토니오에요.프란체스코 수도회에 가서 수도사가 되려고 했어요. 그만큼 절제되고 금욕적으로 지내는 거 좋아하고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제가 철학자가 아니니까 철학을 한다는 건 아니고 그런 문제를 이야기로 표현하는데 관심이 많아요. 홈페이지에도 써놨지만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까뮈의 작가수첩을 보면, 메모한걸 보면요. 까뮈는 놀라울 정도로 뭐랄까 자신의 감정을 노트에 적지 않은 거에요. 오로지 까뮈가 쓴 것은 소설과 글에 대한 아이디어와 생각들이에요. 이러이러한 것을 써보면 어떨까. 오늘 뭐뭐를 읽었다 다 이런 것들이에요. 거기에 뭘 썼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뭘 안 썼느냐가 중요한 거잖아요. 일상에 대한 감정에 대한 그런 구구절절하고 사소한 일에 대한 묘사가 없어요. 마음을 다 닦은 거에요. 그런 걸 마음이 흔들리는 걸 배제하고, 까뮈는 그걸 다 배제하고 아이디어와 생각들만 적은 거죠. 작가로서. 저도 그런 면에 있어요.
명지대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까지 출강도 젊은 나이에 시작해서 오래 하셨고, 국내 주요문학상을 한 해에 다 휩쓸고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다른 장르에서 이름을 날리는 분들과의 공동작업도 눈에 띄고요. 공동작업한 <내 머릿속의 지우개>시나리오로도 상을 받았습니다. 에너지와 재능이 많은 작가라는 이미지가 있어요.

95년에는 연세 어학당에서 일을 했고요.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게 제가 가진 첫 직장이에요. 라디오를 진행한 적도 있고요.
많은 걸 해봤는데 글 쓰는 거 말고는 뭘 오래 해 본적이 없어요. 제가 호기심이 많아서, 새로운 제안을 받으면 늘 해보는 편이에요. 시나리오를 써보자 그러면 써보고. 라디오를 해보자 그러면 진행하고. 새로운 일을 해보라고 하면 해요. 하지만 글쓰기 말고는 오래 흥미를 가졌던 것이 별로 없어요.
가르치는 일도 그래요. 재능 있는 학생들을 만나는 것도 흥미롭지만, 글쓰기라는 거, 소설이라는 것이 가르친다고 되는 종류의 것이 아니에요. 소설 작법을 가르친다고 괴테나 까뮈, 토마스 만을 길러낼 수 있을 까요? 한계를 느끼게 되니까 지겨워 지더군요. 방송 진행 이런 것도 공허해요. 뭘 하고 있으면, 공허하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어요. 라디오 프로그램, 책 프로그램 좋죠. 그런데 그걸 매일 해야 하잖아요. 모든 책이 다 좋은 것도 아니고. 좋은 책이 하루에 한 권 나올 리가 있어요? 시나리오도 마찬가지에요. 흥미로운 작업이죠. 하지만 제 손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에요. 제 영역 밖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많은 영향을 끼치니까요.
시나리오는 일종의 반제품 이라는 말씀이신가요? 소설이 완제품이라면요.
맞아요. 제가 탈고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아주 많은 요소들이 한 영화를 완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쳐요. 저는 소설 쓰는 게 가장 좋고 재미있어요. 너무 좋아서 출간하지 않고 그냥 완성한 채 집에 두고 있는 원고도 있어요. 탈고했는데, 저만 가지고 있는 거에요. 이건 또 다른 즐거움이에요. 독자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는 행위 자체가 저에겐 더 의미가 있어요. 쓰는 것만으로도 너무 즐겁고 재미있고, 그 자체가 삶의 기쁨인 거에요.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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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KBS 1라디오에서 이 분이 했던 문화포커스 매일 들었어요.
힘을 하나도 안 주는 편안한 진행과 문화예술에 대한 감각... 재치, 위트, 말발까지...
그렇게 재미있었을 수가 없었는데, KBS 내부 아나운서로 바뀌면서 예전 맛이 안 나더군요...
그래서 끊었죠...
여담인데.. 정관용씨 잘리고는 매일 7시 20분에 해주던 집중토론도 끊었어요...
진행자로서 양자간의 중립지점을 정확히 걸어가는 경이적인 균형감각...
청취자들과 토론참여자들이 별 헛소리를 다해도 깔끔하게 정리해주시는 진행능력...
역시 KBS 내부 아나운서로 바뀌니 맛이 안 나대요...
그래서 요즘은 KBS 1라디오 안 들어요.
김영하씨... 혹시 다른 방송 진행자로 돌아올 생각은 없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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