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지 디비기] (3) 잉여력의 극한
2010. 07. 23.금요일
아홉친구
삼국지 디비기 1편 : 현재 우리가 가진 <삼국지>의 의미
삼국지 디비디 2편 : 역사와 맞물려 있는 중국의 <삼국연의>
중국에 이런 말이 있다.
“一呂二馬三典韋, 四關五趙六張飛”
(일여이마 삼전위,사관오조육장비)
무슨 뜻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리고 마오저둥(毛澤東)은 이에 관해 조금 다른 의견을 남겼다.
“一呂二趙三典韋, 四關五馬六張飛”
(일여이조삼전위,사관오마육장비)
<삼국연의>의 무장들을 순서 매기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지위와 국적을 불문하고 해왔던 짓거리였던 것이다. 저 말도 지역마다 다르고, 시기마다 다르고, 심지어 동네마다 다르다. 7위 밑으로 가면 장료 장합 안량 황충 하후돈이 뒤섞여 중국인끼리도 뭐가 맞냐며 말싸움 벌이곤 하니, 그 관심도를 짐작할 수 있겠다.
서열의 기준은 물론 주관적이며, 사적 근거보다는 이미지를 십분 반영한 결과이리라. 그 이미지들은 당연히 <삼국연의>가 만든 것이다. <삼국연의>에 허구가 많이 가미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더라도, 진실이 아닐 수 있다 하더라도 ‘최고 무장은 누구인가’란 잉여적 궁금증은 가시지 않는다. 무장의 ‘서열화’는 폐단인 동시에 유혹이다. 이를 모른 체 하는 것 또한 정공법은 아닐 터.
따라서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이번 편에서는 제대로 배반하겠다. 오직 무력만으로 본 장수들의 서열, 그것이 이번 편의 주제이다. 기준은 당연히 <삼국연의>. 정사와의 비교는 과감히 생략하며 게임 <삼국지>의 수치는 무시한다.
물론 무장을 평가하려면 무력뿐만 아니라 충성심, 전술활용, 임무수행도, 후세의 영향을 다 고려해야 한다는 거, 다들 알고 있는 바다. 무장과 장수의 구분도 엄밀해야 할 것이다.
그건 다음에.

그리하여 정리된 아래의 내용은 필자가 수년간 심혈을 기울인 역작… 이 아니다. 엠비셔스하고도 용석스런(음?) 짓을 저지를 수는 없는 법. 솔직히 털어놓자면, 사실은 <삼국연의> 장수들의 여러 평가를 조사하던 중, 중국 블로거들의 <삼국연의> 무장 무력분석을 읽게 되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번역이란 소리.
이 자료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2001년이며, 삼국지 커뮤니티의 맹주들이 여기에 반론하고 보완을 하면서 <삼국연의> 재야 최고수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되었다. 나아가 이들은 자신이 장기로 삼는 각 판본별로 논의의 성과를 종합하기 시작했다.
명나라 가정(嘉靖) 원년(1522년)에 나온 가정판(嘉靖版)은 나관중의 저작에 가장 근접했다고 여겨지는데, 이를 기초로 <가정판삼국오백위무장무력분석>이, 그리고 가장 최근인 2010년 2월에는 청나라 모종강 판본을 기준으로 하여 <마대무평>이 만들어졌다. 근 10년에 걸친 중국 잉여력의 결실이라 하겠다.
처음에는 이 자료를 참고용으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워낙 자료의 양이 많고, 또 무력치 비교의 근거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꽤나 재미있고 논쟁거리가 되는지라, 독자들에게 직접 소개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졌다.
자료의 출처는 <가정판삼국오백위무장무력분석>이며, 이 자료의 공저자이기도 한 블로거 ‘burrjiang’의 주석을 참조했다. 정사도 아닌, 왜곡과 오류가 난무하는 나관중 판본을 갖고, 그것도 만고에 쓸데없는 무력치 비교를 이렇게 진지하게 하다니, 그 잉여적 진정성에 고개가 숙여진다. 원문은 굉장히 길어서, 아래 번역은 짧게 간추린 것에 불과하다. 무장 전부를 소개하기에도 벅차 초일류무장급으로 분류된 15명만 여기에 소개한다. 해석 되시는 분은 직접 찾아가보시기 바란다. 대체 얼마나 긴지 슬쩍 훑어보시는 것도 좋겠다.
원문링크
원래는 나이, 무기류, 교전상황, 후퇴 유형 등등에 따라 어떻게 점수를 매겼는지 상세히 소개해놓았는데, 여기서는 따로 소개치 않겠다. 대충 넘어가지는 않았다고만 알아두시라. 무장의 점수는 여포를 100으로 보고 상대평가한 것으로, 최하점이 75였다. 서열을 매기기 위한 것일뿐 무력치 자체는 아님을 밝혀둔다.
그럼 이제 떡밥 투척!
嘉靖版三國五百位武將武力分析
(나관중 판본에 입각한 무장들의 무력 분석)
초일류무장 15명
천하제일
100 여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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强 초일류무장
99 안량
98 관우 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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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초일류무장
97 장비 조운 전위 문추 문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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弱 초일류무장
96 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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準 초일류무장
96 황충 방덕 조창 태사자
95 올돌골 제갈상
여포

- ‘사람 중엔 여포가, 말 중에선 적토마가 제일이다’(人中呂布 馬中赤兎)라는 최고의 표현으로 그를 수식한다.
- 동탁 진영에 있던 여포가 조조 연합군과 맞섰을 때, 여포는 24세의 장비를 맞아 싸우면서 “장비는 점점 창 솜씨가 흐트러졌지만, 여포는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졌다”고 하였다. 이후 관우가 협공해 30합을 겨루었으나 여포를 쓰러뜨리지 못했다. 유비가 여기에 가세하고 나서야 여포는 떠났다. 여포가 장비 관우보다 분명한 우위에 있다는 증거다.
- 여포는 허저와 20합을 겨루어 승부를 내지 못했다. 조조는 전위를 출전시켰고, 하후씨 형제와 이전, 악진까지 보내서야 여포에게 이길 수 있었다.
- 서기 196년 여포는 장비와 100합을 겨루어 승부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여포는 체력이 예전같지 않았다. 서기 195년 여포는 일처이첩을 두고 있었는데, 이때 주색에 빠져 무력이 급격히 하락했고, 책에서는 두 차례나 체력이 쇠퇴했음을 언급하고 있다. 반면 장비는 32세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이다. 한마디로 전성기의 장비와 쇠퇴기의 여포가 붙어 승부를 내지 못했으니, 무력 차는 분명하다고 볼 수 있다. 말년에 여포는 원술 휘하의 양강, 악취와 1대2로 싸워 이기지 못했는데, 모종강 판본에는 이 부분이 없다. 또 모종강 판본에선 전성기의 여포가 장비와 50합을 겨루어 승부가 나지 않았다고 해놓았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장비를 높임과 동시에 여포의 전투력 쇠퇴를 부각시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포가 무력 제일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 여포 천하제일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라 믿고 다른 근거는 생략.
안량
위 등급 구분에서 가장 논쟁 대상이 될 인물은 안량일 것이다. 자 그럼 한번 따져보자.
- 안량이 20합에 서황을 쓰러뜨려 조조 군영의 장수들은 모골이 송연해졌다고 한다. 허저는 50합을 겨루어 서황과 무승부를 기록한 바 있다. “연일 패한 조조 군영의 장수들이 매우 많았다”는 표현도 있다. 서황만 진 게 아니니, 조조 군영에선 안량을 상대할 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조조가 관우와 상의할 때 안량을 특별히 거론한 이유도 이것이다.
- 조조가 정욱에게 안량을 상대할 자를 묻자 관우가 아니면 안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허저조차도 이미 졌든지, 상대가 안된다고 여겼던 상태다. 그런데 나중에 정욱은 관우를 찾아가 “이긴다면 중용할 것이요, 패한다면 의심을 없앨 수 있다”고 하였으니, 관우가 반드시 안량을 이긴다고는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 관우가 안량을 꺾은 상황을 보자. 관우는 “청룡도를 거꾸로 쥐고” 또 “투구를 안장 앞에 두고” 안량의 진영에 다가갔다. 그래서 원소군은 전투상황이 아니라고 여기고, 양쪽으로 갈라져 안량에게 길을 열어주었던 것이다. 이때 관우는 갑자기 안량에게 돌격한다. 안량은 깃발 밑에 있다가 관우가 오는 것을 보곤 무슨 일인지 물으려다, 한칼에 당한다. 이 상황에 대한 다른 보충설명이 있다. 안량이 원소의 명을 받아 떠날 때 유비가 한 말이 있기 때문이다.
“저에게 동생 하나가 있는데, 관운장이라고 불립니다. 몸은 구척 오촌이요, 수염이 일척 팔촌이라, 얼굴은 대추같고 눈이 봉황 같으며, 녹색 비단 전포를 즐겨 입는데 황표마를 타며 청룡 대도를 씁니다. 분명 조조에게 가 있을 것입니다. 그를 보게 되거든 급히 와달라고 해주십시오.”
그래서 안량은 관우를 보고 투항하러 오는 모양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최소한 안량이 전투태세를 취하지 못했던 것은 확실하다. 따라서 안량의 패배가 무력 차이라고 보는 건 무리가 있다.
- 화웅이 연합군에 맞섰을 때 원소는 “내 휘하의 안량 문추 중에서 한 명만 있더라도 화웅이 위세를 떨치게 놔두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호로관에서 여포가 제후들을 무찌를 때에는 원소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로 미루어볼 때 원소는 안량이 여포를 이긴다고 보지 않았다. 앞서 조조와 정욱의 말로 미루어, 허저는 안량의 상대가 아니다. 또한 허저는 여포와 20합을 겨루고 전위의 도움을 받았으니 역시 여포의 상대가 안된다. 따라서 안량이 여포보다는 밑이라도 다른 장수보다는 위다.
관우

- 전성기 관우가 쓰러뜨린 장수는 거론하기 힘들 정도다. (정원지, 순정, 관해, 차주, 공수, 맹담, 한복, 변희, 왕식, 진기, 채양…)
- 일합에 화웅을 쓰러트렸는데, 당시 용맹을 떨쳤던 손견조차도 상대하지 못할 정도로 화웅의 위용은 대단했다. 화웅이 마궁수 복장의 관우를 얕보아 방심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동탁이 화웅에게 적을 얕보지 말라는 충고를 했었고 상황도 다르기 때문에 안량의 방심과는 비교할 수 없다.
- 애꾸눈이 된 하후돈이 10여 합을 겨루다가, 하후돈은 관우를 유인해 퇴각하면서 싸웠다. 여포는 10여 합을 겨루어 전성기의 하후돈(애꾸눈 아님)에 이긴 바 있다. 따라서 관우의 무력은 여포보다 밑이다.
- 정욱이 조조에게 관우가 아니면 안량을 상대할 수 없다고 말한 것에서 볼 때, 관우는 당시 조조 휘하에 있던 허저, 장료, 하후돈보다 위라고 판단되었다. 하지만 하후돈과 채양은 이러한 판단에 승복하지 않았다. 이로 미뤄볼 때 하후돈의 관점에서 관우는 안량에 미치지 못했다.
- 관우가 허저와 서황의 합공을 이긴 일이 있지만, 이는 조조가 관우를 투항하게 할 목적이었기 때문에 전력을 다한 싸움이라고 보기 어렵다.
- 관우가 안량을 벤 후 조조가 칭찬하자 관우는 이렇게 말했다. “내 아우인 燕人 장익덕은 백만대군 속에서도 장수 머리 베기를 주머니 속 물건 빼듯 하외다.” 그러나 이는 겸손의 말이며, 관우의 의도는 조조 군영의 장수들을 폄하하고 장비를 높이기 위함이지 ‘자신이 장비보다 못함’을 말하려는 게 아니었다.
- 공명이 장비를 자극하기 위해 한 말이 있다. “마초가 침범해 오는데 당할 자가 없소. 형주로 가서 관운장을 불러와 막는 수밖에 없겠소. 마초에게 한신과 영포의 용맹이 있음은 천하가 아는 바이며, 위교에선 조조가 제 수염마저 자르고 도망갈 정도였소. 그대의 형인 운장이라도 반드시 이긴다고는 못할 것이오.” 이 말은 공명이 장비의 분노를 일으킬 의도로 한 것이지만, 관우가 장비의 위에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마초

- 조조는 “마초는 여포의 용맹에 뒤떨어지지 않는다(馬超不減呂布之勇)”이라 말한 적이 있다.
마초를 찬미한 시에서는 ‘西天馬孟起 名譽震關中 信布齊誇勇 關張可竝雄’ 이라 하여 관우 장비와 동급으로 보았다.
- 마초는 조조의 대군을 맞아 싸우다 장합과 겨루어 채 3합도 되기 전에 이겼다.
- 마초는 한수 수하의 후선, 이감, 양흥, 마완, 양추를 홀로 상대해 이겼고(양흥과 마완 사망), 양부(楊阜) 8형제를 역시 홀로 상대해 7명을 죽이고 양부를 부상입혔다.
- 마초가 장비와 맞섰을 때 100합이 넘어가자 유비는 장비를 잃을까 두려워 나팔을 불어 회군시켰다. 장합은 노년의 장비와 싸워 110합을 겨룬 후에 패했다. 따라서 마초는 장비보다 세다. 그러나 전성기 장비가 쇠퇴기의 여포를 이기지 못한 것을 볼 때, 마초는 여포보다 약하다.
- 관우와 마초는 직접 대결한 적이 없다. 다만 관우는 마초의 무예가 상당하다는 것을 듣고, 직접 서천으로 달려가 승부를 가리고자 했던 적이 있다. 마초의 명성이 자신보다 드높았기 때문에 관우가 흥분했던 것이다. 그 반대라면 굳이 비무를 자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당시 중년이 된 관우보다는 마초가 더 셌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 장합은 조운과 두 번 싸웠으나 승패가 불분명했다. 따라서 마초는 조운보다 세다.
- 마초가 허저와 270합을 싸우자 조조는 “허저를 잃을까 두려워” 조홍과 하후연을 보내 협공시켰다. 따라서 마초는 허저보다 세다. 허저와 눈싸움에 진 일이 있으나 그건 심리전이며 전면적인 결투가 아니었다. 허저는 전위와 300합을 싸워 승패를 가리지 못했으므로 마초는 전위보다 세다고 볼 수 있다.
- 조조는 허저 1인만을 대동하고 마초와 만난 적이 있다. 조조는 허저라면 마초를 막을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미 지적했듯이 허저는 안량보다 못하다. 따라서 마초도 안량보다 위일 수는 없다.
장비

- 여포의 경우에서 보았듯, 24세의 장비는 전성기의 여포를 혼자서 감당하지 못했다. 여포가 체력이 떨어진 시기에도 30대의 장비는 100합을 겨루어 이기지 못했다. 따라서 장비는 여포와 비교하기엔 무리다.
- 55세의 장비는 장합과 110합 넘게 겨루어 겨우 패퇴시켰다. 나이를 고려한다고 해도 마초의 3합 승리보다는 분명히 뒤떨어진다. 장비와 마초의 승부에서 마초가 암기를 쓴 것이 논란의 대상이 되는데, 유비는 상대의 예기를 꺾기 위해서 마초가 기다린지 한참 지나 장비를 내보냈다. 이것도 속임수라면 속임수다. 게다가 장비는 한 명의 장수지만, 마초는 군을 이끄는 입장이었다. 빨리 승부를 봐야 할 이유가 있었다. 장비보다 힘이 떨어져서 암기를 썼다고는 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 도망 중인 원술군을 기다리다가 장비는 기령(紀靈)을 10여 합에 죽였다. 관우는 기령과 20여 합을 싸운 적이 있다. 상황은 다르지만 장비와 관우의 무력 차이는 크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 장비와 허저는 모두 마초와 싸워봤다. 장비는 ‘그 날카로운 기세를 피한’ 상태에서, 중간 휴식을 거쳐 250합을 겨루었으나 마초와 무승부였다. 허저는 심리전에서 이긴 상태에서 싸웠으나 270합 후에 조조의 지원을 받아야 했다. 따라서 장비와 허저의 차이는 크지 않고, 마초는 이들보다 위다.
- 모종강 판본에서는 장비가 장합에 110여 합을 싸워서야 이겼다는 대목을 삭제했고, 여포와 싸워 ‘장비의 창법이 산란해졌다’는 표현도 ‘50합을 싸워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로 고쳤다. 따라서 모종강 판본을 기준으로 한 분석에서는 장비를 여포에 이은 2인자로 평가하고 있다.
조운

- <삼국연의> 삽화 중에서 창을 쓰는 그림은 조운이 유일하여 ‘연의제일창(演義第一槍)’으로 평가된다.
- 조운의 적진 돌격은 삼국 무장 중 최강으로 평가받는다.
- 장판파에서 단기로 조군 진영을 휩쓸었다. 조조가 영을 내려 ‘화살을 쏘지 않은 상태’에서 조조군 장수 50여 명을 죽였다.
- 원소군과 맞붙어 국의를 죽였고 무인지경인 듯 군영을 넘나들었다. 당시에 안량 문추는 없었다.
- 노년에 조운은 한덕의 8만 서량군을 넘나들었다.
- 조운과 장합이 두 번 붙었는데 모두 정상 상태가 아니었다. 첫 번째는 장합이 유비의 여남(汝南) 노소(老巢)를 친 이후, 장거리를 이동하게 되고 그 다음에 매복했던 조운과 싸운 것이다. 이때의 장합은 체력이 정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모종강 판본에선 영지에 있던 허저 우금 이전 등이 조운과 싸웠고, 이후 조운이 ‘기다리고 있던’ 장합과 싸운 것으로 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조운의 무력이 격상되어 있다. 두 번째는 장판파에서 아두를 데리고 있던 조운이 뒤쫓아온 장합과 겨룬 일이다. “십여 합 이후, 조운은 이기기는 힘들다고 판단하여 탈출했다”고 기록돼 있다. 공평한 환경이 아니었으므로 둘의 승부로 상하를 논하기는 어렵다.
- 장합과 서황이 황충을 포위 공격했을 때 조운이 황충을 구했고, 이때 장합과 서황은 간담이 서늘하여 감히 맞서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장합과 서황의 군대가 황충을 공격했을 때엔 ‘동쪽에 해가 떴다’고 했으니 약 6시경이다. 조조의 지원군은 7시 넘어 왔고,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13시) 질 때 조운이 출발했으니 황충을 구한 것은 14시경이다. 즉 장합 서황군은 8시간 동안 황충과 싸운 상태였다. 그러니 이미 지쳐버린 장합과 서황이 조운을 보고 ‘간담이 서늘해진’ 것은 당연하다. 이것으로 무력을 비교하기엔 무리다.
- 마초가 유비에게 투항한 후 술자리를 가지는데, 유장의 부장인 유준과 마한이 쳐들어 온 일이 있다. 조운은 잠시 후 이들 장수의 목을 들고 술자리에 돌아왔다. 마초가 이를 보고 놀라 ‘존경심이 한층 더해졌다(倍加敬重)’는 언급이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조운의 무력이 마초보다 높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마초도 그 정도급의 장수는 손쉽게 처리할 능력이 있다. ‘倍加敬重’의 표현은 그때까지도 유비 휘하의 장수들을 마초가 업신여기다가 다시 보게 되었다는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이다.
- 주연(朱然)을 우연히 마주친 조운은 한 창에 그를 말에서 떨어뜨렸는데, 관우의 경우 “3합을 겨루기도 전에 주연이 도망쳤다”고 했었다. 그러나 주연이 조운을 만났을 때엔 무방비상태였던 반면, 늙은 관우를 만났을 때엔 매복 중이었다. 동일 조건이 아니기 때문에 비교가 어렵다.
- 형도영(邢道榮)과 관련된 기록에서, 형도영은 장비와 싸워 “몇 합 겨루지 않아 힘을 쓸 수 없었다”고 했고, 조운을 만나서는 “일격에 형도영을 말에서 떨어뜨렸다”고 한다. 하지만 형도영은 공명의 계략에 걸려 한참 체력을 낭비한 후에 기다리던 조운을 만났던 상황이다. 따라서 조운이 장비보다 몇 단계 위라고 보기는 힘들다.
- 정상 상태에서 대결한 기록으론 조운이 이전을 10여 합에 이긴 것이 있다. 하지만 여포는 10여 합에 하후돈을 이겼고, 마초는 3합에 장합을, 안량은 20합에 서황을 이겼다. 조운의 승리를 이들과 비교할 수 있을까?
- 결과적으로, 불운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운은 정상상태에서 일류 무장과 승패를 다툰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이미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전위

- 조조를 구하기 위해 단기로 들어가, 단극을 휘둘러 “한번 휘두를 때마다 인마가 쓰러지니,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선 자리에서 수십여 명을 죽였다”고 했다.
- 여포 휘하의 장수 학맹, 조성, 성렴, 송헌을 홀로 격퇴했다. 이에 비하면 장비는 송헌과 위속 둘을 죽였다. 따라서 전위를 장비보다 아래라고 볼 순 없다.
- 패배 상황에서 고순과 후성의 합공을 격퇴했다.
- 허저와 300합을 겨루어 무승부를 냈다. 그러나 앞서 전위가 쓰러뜨린 무장들과 비교하면, 허저는 산적인 손관, 오돈, 윤례, 창희 등을 격파했고 양앙과 양임을 이겼다. 상대 장수들의 실력 비교에서 전위가 허저보다 위다.
문추

- 공손찬의 진영에 돌진하여 장수 네 명의 합공을 받았으나, 문추의 일격에 한 명이 말에서 굴러 떨어지고, 나머지 셋은 도망갔다. 공손찬 진영을 무인지경으로 몰아쳤다.
- 화살로 장료에게 부상을 입혔다.
- 체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소년 조운과 50~60합을 겨루어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 문추를 초일류무장 14명의 반열에 올리긴 어렵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전공에 미루어 보면 원소가 화웅과 맞서 “안량 문추 중 하나만 있다면”이라 탄식한 대목을 거짓으로 볼 순 없다.
- 안량이 관우에게 죽은 후, 안량의 복수를 하겠다고 하자 원소는 “네가 아니면 안량의 복수를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여기서 보면 문추의 무력은 안량과 비슷해야 한다. 그런데 문추는 서황과 30여 합을 싸웠고, “서황은 문추 뒤에 군마가 다다른 것을 보곤 말을 돌려 도망갔다. 문추는 강을 따라 쫓아갔다.”는 기록에서 볼 때, 서황을 20여 합에 이긴 안량보다 문추가 위일 수는 없다.
- 관우와 두 합을 겨룬 후 문추가 겁을 먹었다(心怯)는 표현이 있어 문추의 무력을 낮게 보는 의견이 있다. 문추가 겁을 먹은 데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당시 문추가 추격했던 서황이 되돌아올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며, 또 하나는 관우에게 안량이 죽었다는 사실을 문추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겁을 먹었다’는 표현은 다른 장수에서도 보이는데, 관흥이 월길을 처음 만났을 때에도 ‘간담이 서늘했다(膽寒)’고 했다. 그러나 두 번째 만났을 때 관흥은 일격에 월길을 죽인다. 여포도 ‘장비의 용맹함을 익히 알아 감히 맞붙질 못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지만 여포를 장비보다 밑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문추가 관우에게 겁을 먹었다는 표현으로는 무력 차이를 논하지 못한다.
문앙

- ‘만부부당(萬夫不當)의 위용을 지녔다’는 표현은 <삼국연의> 여러 장수에게 남용됐지만, 후삼국(공명 사후) 무장으론 문앙이 유일하다.
- 문앙이 초일류무장 반열에 오른 것은 낙가성(樂嘉城) 전투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들도 많으므로 조금 소개를 해보겠다.
서기 255년 관구검과 문흠은 위나라에 대항하는 반란군을 조직한다. 문앙은 여기에 속했고 당시 18세였다고 한다. 위나라에서는 등애와 사마사를 보내 낙가성에서 이를 막았다. 등애는 성안에 대군을 숨겨두고 반란군을 유인했다. 반란군은 잠시 동요했지만, 문앙은 야습을 펼쳐 사마사의 대군을 혼란에 빠뜨렸다. 그러나 문흠이 제때 문앙을 돕지 못하여, 역으로 사마반의 군사에게 문앙은 쫓기게 된다. 밤새 싸워 체력이 소진된 문앙은 등애와 40~50합을 겨루어 승부를 내지 못했다. 그 와중에 위나라 병사들이 진격하여 전후로 협공을 가해, 부하들은 도망갔지만 문앙은 홀로 병사들을 헤치고 남쪽으로 도망간다.
배후에 수백 명의 위나라 장수가 쫓아오는 가운데, 문앙은 성 안팎을 가로지른 다리에서 갑자기 뒤돌아 역으로 진격한다. 문앙은 “쥐새끼들이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구나!(鼠輩何故不惜命也)”라 외치며 채찍을 들었고, 이를 몇 번이나 반복하며 홀로 수많은 장수들을 쓰러뜨렸다.
이 대목은 후세에 ‘장판파에 장비가 있다면 낙가성에 문앙이 있다’는 식으로 전해지며 문앙을 장비와 동급으로 평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문앙이 상대한 수백 명은 병사이지 장수가 아니라고 지적하는데, 원문에는 ‘背後數百員魏將’처럼 장수를 지칭하는 표현이 7군데 발견된다. 따라서 등애를 비롯한 수백 명의 장수를 홀로 상대한 문앙의 무력은 높게 평가되어야 한다.
- 문앙의 이러한 위용이 여포에 버금간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후삼국 시기의 무장은 전삼국보다 확연하게 무력이 떨어진다. 방덕의 상대가 아니었던 위연조차도 후삼국 시기에 들어오면 위나라에서 ‘모두 두려워했다’고 한다(다른 근거도 많지만 생략). 따라서 문앙의 무력은 업적에 비해 저평가될 수밖에 없다.
허저

- 허저와 전위의 싸움은 <삼국연의> 통털어 가장 장시간의 대결이었다. 진시(7~9시)부터 시작해 오시(11~13시)까지도 승부가 나지 않았고, 잠시 쉬고선 신시(15~17시)부터 황혼까지 또 싸워, 말이 지쳐 쓰러지는 바람에 끝났다.
- 허저는 수많은 일류 무장과 싸웠지만 직접 패퇴시킨 기록은 없다. 산적떼 네 명의 장수를 무찌르고, 원소 수하의 장수 십여 명, 그리고 홀로 양앙과 양임 둘을 쓰러뜨렸다.
- 허저가 여포와 20여 합을 싸운 후, 조조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여포는 한 사람으론 이길 수가 없도다.” 그 후 다섯 장수를 더 보내 여포에게 합공을 했다. 여포 이외에 조조가 동시에 여섯 장수나 대적시킨 무장은 없다. 심지어 마초가 이통을 죽였을 때에도 조조는 합공을 명령하지 않았다. 그러니 기본적으로 조조는 합공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던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조조의 말은 실력이 떨어지는 허저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했던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 위의 언급에서 볼 때, 조조와 정욱이 관우를 써서 안량과 상대하게 한 것은, 분명히 허저보다 관우의 실력이 낫기 때문이었다.
- 마초와의 대결은 조조의 안배가 작용한 결과다. 우선 마초는 조조가 하룻밤에 성을 쌓은 걸 보고 크게 놀랐으며, 한수가 허저를 크게 높이는 말을 듣곤 속이 상한 상태였다. 여기에 허저는 격동된 상태에서 조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전을 벌인다. 240합을 겨루고 승부가 나지 않자 허저는 굉장한 모험을 감행했다. 진영에 돌아와 갑옷을 던져버린 것이다. ‘살기 아니면 죽기’로 덤빈 허저는 좀더 잽싸게 몸을 놀렸고 그 덕에 마초의 창을 잡을 수 있었다. 그 다음엔 자기 칼을 던져버리고 창을 뺏으려 애썼다. 이후 창은 두 동강이 나서 마초와 허저는 반만 남은 창으로 싸운다. 당연히 갑옷 없는 허저가 불리했다. 이 때문에 조조는 ‘허저를 잃을까 두려워’ 하후연과 조홍을 보낸 것이었다. 즉 허저가 일기토에서 일류 무장과 호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공격뿐인 태도 때문이었으며, 또한 그 이유 때문에 맞서기는 가능하지만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다. 조조도 그러한 허저의 경향을 잘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 허저와 일류 무장들과의 대결을 정리해보자.
여포 : 20합 무승부. 조조는 전위 등의 다섯 장수를 합공시켜 여포를 물리쳤다.
안량 : 싸우지 못함. 조조 군영에선 안량을 대적할 자가 없다고 했음.
마초 : 심리전에서 이긴 상태에서 붙어 270합 무승부. 조조가 후에 협공시킴.
관우 : 관우가 아니면 안량과 싸울 자가 없다는 정욱의 말이 있다.
전위 : 300합 무승부. 허저의 무력치를 높게 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증거. 그러나 전투라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조운 : 체력이 떨어졌을 때 조운과 붙어 30합 무승부.
장비 : 술에 취해 장비와 붙어 부상을 입음. 패주 중 장비를 만나 10여합 붙고는 ‘의욕상실’로 도망감.
방덕 : 사로잡는다는 전제 하에 50합을 붙어 도망감. 실력 차일 수도 있음.
서황 : 50합 무승부.
고람 : 승패가 기록되지 않음
문빙 : 싸운 적 없음. 허저는 주태 한당과 30합을 겨뤄 물러서게 했으나, 문빙은 주태와 한당을 막지 못했음.
황충

- 장노가 마초를 보내 유비를 쳤을 때, 공명은 말했다. “장비와 조운 둘이면 막을 수 있습니다.” 당시 관우는 형주에 있었으며, 공명은 황충을 언급하지 않았다. 공명은 또한 황충을 자극하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장합은 위의 명장입니다. 익덕이 아니면 막을 사람이 없습니다.” 따라서 공명은 당시 황충이 장비나 조운보다 아래였다고 판단했다.
- 관우와 100합을 싸워 승부가 나지 않자, 한현이 신호를 보내 황충은 후퇴했다. 이때 관우는 “노장 황충, 역시 명불허전이로다. 100여 합을 겨뤘지만 허점이 없었다. 내일은 계책을 써서 도망가는 척하다가 돌아서 베어버릴 것이다.”라고 했다. 즉 관우는 여전히 황충보다 자신이 낫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 계책은 틀리지 않았다.
- 한수에서 장합과 서황에 맞서 반나절을 싸웠으나 지지 않았다.
- 이엄과 40~50합을 싸워 승부를 내지 못했으나, 우세를 점했다.
- 75세 때 오나라의 번장과 싸웠으며, “번장은 맞서기 어렵다고 여기고 말을 돌려 도망갔다”고 했다.
- 황충의 활약은 59세 이후이므로, 젊었을 적에는 더욱 강했을 터이니 무력치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황충의 청년기는 <삼국연의>에 나오지 않으니 근거를 찾을 수 없다. 또한 황충이 언제부터 무예를 익혔는지도 알 수 없다.
방덕

- 조조는 “관씨 성을 가진 이가 화하(華夏)에서 위세를 떨치면서 그 상대를 찾기 어려웠소. 이제 그대를 만나니 진정 상대가 되겠소.”라고 말했다. 관우 역시 늘그막에 “방덕의 칼솜씨는 빼어나다. 진정 나의 적수로다.”라고 하였다.
- 방덕은 노년의 관우와 50여 합을 맞붙었다. 이때 방덕은 말을 돌리는 속임수를 쓰고, 화살을 쏘아 쫓아오던 관우를 맞추었다. 무공 비교에 약간의 무리가 있지만, 관우가 방어 불가한 상황은 아니었으므로 정당한 대결과정이라고 봐야겠다. 이것은 관우 평생을 통털어 유일한 패배였다. (서황에게 작은 부상을 당한 적은 있다)
- 방덕은 장합, 서황, 허저, 하후연에게 차륜전을 당한 적이 있다. 조조는 이때 미리 방덕을 사로잡으라고 명령해 두었다. 하지만 장합과 하후연은 수 합 만에 물러섰고, 서황도 5합 정도에, 허저 역시 50여 합만에 물러섰다. 사로잡기 위해서이니 힘을 다 쓰지 않았다곤 하지만, 보통은 몇십 합 싸우면서 체력을 빼놓아야 하지 않았을까? 때문에 방덕의 무공이 생각보다는 강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 조조가 사람들 앞에서 휘하 장수를 칭찬한 것이 세 번 있다. 첫째 전위를 ‘악래’와 같다며 칭찬한 것, 둘째 허저를 ‘번쾌’에 비유해 칭찬한 것, 마지막이 ‘방덕의 용맹을 깊이 알겠도다(深知龐德之勇)’이라며 방덕을 칭찬한 것이다. 안량의 경우에서 볼 때 관우는 허저보다 위였다. 그리고 방덕은 노년의 관우와 비등한 실력이었다. 따라서 방덕이 최소한 허저의 아래는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조창

- 3합에 유봉을 쓰러트렸다. 유봉은 50세가 된 서황과 교전할 정도는 되었다. 그런데 단 3합에 조창이 이겼다고 하면, 조창은 서황보다 강하다고 볼 수 있다.
- 1합도 되기 전에 오란을 말에서 떨어뜨렸다. 노년의 황충은 오란과 겨루어 단시간에 이기지 못하고 묶여, 장임의 습격을 받은 유비를 구하지 못한 기록이 있다. 당시 황충은 며칠 동안이나 전투를 하여 체력이 매우 떨어진 상태였으므로 조창보다 밑이라고 하긴 어렵다.
- “손으로 맹수를 잡을 수 있었다(能手格猛獸)”란 표현이 있다. 이는 호랑이를 쫓던 전위에 손색이 없으며, 소 꼬리를 잡아 백보를 뒷걸음치게 한 허저보다 나은 언급이라고 볼 수 있다.
- “조조는 조창이 온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황수아(‘황색수염’ 조창의 별명)가 멀리서 왔으니, 유비를 깨는 날이 바로 오늘이로다!” 장수들이 말했다. “지금은 패하는 형국인데, 어떻게 이긴단 말입니까?” 조조가 말했다. “내 아들이 북방을 휩쓸어 수천 리를 평정했다. 이제 승리의 군사가 와서 도와주니, 어찌 이기지 못하겠는가?” 이 대목을 보면 조조는 조창의 무력으로 패전 형국을 반전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 나관중 판본에는 조창의 등장 횟수가 많지 않다. 이 때문에 조창의 무력은 상대적으로 저평가된다. 그러나 거론된 전투에서는 모두 초일류급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태사자

- 황건적 십수만 군사가 포위하고 있던 서주성에 홀로 진격해 들어가 성에 도착했다. 다시 홀로 포위를 뚫어 “적장 수백 중 삼십 인이 말에서 굴러 떨어지니, 나머지는 후퇴했다”고 했다. 모종강 판본에서는 이 부분을 삭제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태사자의 무공이 낮게 묘사되었다. 상황으로는 장판파의 조운과 비견할만 하여 초일류 반열에 들었으나, 장수들과의 비무가 없기 때문에 문앙만큼의 평가를 받지 못했다.
- 손책과 130합을 싸워 승부를 내지 못했다.
- 장료와 태사자가 80합을 겨루었을 때, 악진이 홀로 손권에게 돌격해 송겸과 가화가 이를 막았던 장면이 있다. 이로 미루어 장료는 태사자에 우위를 점한 상태가 아니었다. 태사자는 이때 장료를 버리고 본진으로 돌아갔으며, 장료는 이 기세를 타고 압박해 들어와 오군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따라서 태사자 역시 장료에게 우세를 점한 상태는 아니었다. 다만 당시 태사자는 오로지 혼자 힘으로만 장료를 막으면서 패전 형세를 완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 궁술면에서 태사자는 최고다. 관해가 수백 기의 병사로 포위했을 때 태사자는 활로만 수백 명을 쏘아 죽여 결국 후퇴시켰다고 했다.
올돌골

- 오과국(烏戈國)의 국왕. 키가 2장(丈)으로 <삼국연의> 무장 중에서 가장 키가 크다(약 288cm).
- 몸에 비늘이 있어 칼과 화살이 뚫지 못한다.
- 등갑군을 이끌고 위연군과 맞붙었다. 촉병은 칼과 화살이 등갑군을 찌르지 못해 크게 패하고 만다.
- 공명은 위연과 조운을 대동했지만 올돌골과 정면 교전을 피했다. 이들에겐 계책도 통하지 않아 결국 3만 등갑군을 모조리 불에 태워 죽이고 만다. 따라서 올돌골의 무력은 측정하기 어렵다.
- 내세울 전적이 딱히 없지만, 공명조차도 무력으로는 올돌골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봤으니, 패배가 예상되지 않는다. 올돌골의 무력 평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제갈상
- 제갈상은 단창을 써서 홀로 수찬, 등충 두 명의 장수를 물리쳤다. 강유는 노년에 등충과 40합을 붙어 승부를 내지 못했다. 제갈상은 둘을 한꺼번에 이겼으니 강유보다 세다고 봐야 한다.
여기까지 ‘짧게 간추린’ 잉여력의 기록을 읽으시느라 수고 많으셨다. 이하는 그냥 기록만 전하겠다.
95 장료 하후돈 위연 감녕
94 손책
94 서질 서황 조인 왕쌍 장포
93 손환 화웅 장패 장합 강유 하후패 관평
92 주태
92 하후연 관흥 정보 고람 관해 등애 장임
92 문빙
91 능통 이엄 우금 호분 주창
길고 긴 번역이었다. 배반으로 실망을 안겨 죄송스런 마음도 좀 들지만, 삼국지빠에겐 충분히 재미있을 내용이라고 여긴다. 어떤 면에선 직접 글쓰는 것보다도 더 힘든 작업이었으니 양해 바란다.
끝으로 민망하지만 기사가 맘에 들었다면 #2235 문자 날려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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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크로캅이 간발의 차이로 패했다고 보긴 힘듦. 크로캅은 자신의 주분야인 타격에서부터 밀리고 있었고 하이킥은 오히려 효도르가 썼고 그라운드 들어가서 오히려 선방했다 볼 수 있으나 2라운드 들어가면서부터 급격한 체력 저하로 이미 전의상실에 가까운 상태였음. 노쇠캅, 도망캅이란 별명이 이때부터 생겼음.
2. 효도르는 랜들맨을 리어네이키드 초크가 아니라 암락인지 키락인지 하여튼 팔 관절기로 이겼음.
3. 크로랜들 1차전 때 하이킥 날리기 직전의 크로캅을 한 방으로 주저앉힌 것은 랜들맨의 실력에 크로캅의 방심도 한 몫 했음. 절치부심한 결과 리벤지에선 랜들맨 거의 아무 것도 못 해 보고 타격도 아닌 길로틴 초크로 졌음.
단순비교는 무리인 건 맞지만 저 셋 같의 서열은 명백함. -
무협 동호회에서 김용의 열네작품을 놓고 그 세계 속에서 '무공 천하제일'을 논하던 거 기억나네 ㅋㅋ
이젠 별로 관심없는 사안이긴 한데( 것보다 삼국지를 '정치적인 면'에만 초점을 맞추어서 그런듯)
옛날 생각이 나서 한마디 토 달아 보자면
이종격투기는 잘 모르겠고.. 스타 크래프트 프로리그에 비유하자면-
임이최마 택뱅리쌍 등등등... 중에 누가 '최고수'인가 논해 보자는 얘기지
'주무기'가 다르고, 게중에는 먹고 먹히는 상성관계가 있을텐데?
애초 어느 쪽으로 보든 거의 네버엔딩 스토리일 것
다만, 스스로도 어릴적 부터 바퀴벌레랑 사마귀가 싸우면 누가 이기는지.. 진짜 마징가랑 태권브이가 싸우면 어떻게 되는지 무척 궁금했던 일인 (수컷본능?)이자..
학창시절 각종 삼국지 겜을 재미있게 해가며 무장들 일대일 승부(참, '일기토'라는 말 굳이 안 쓰셨음 좋겠음.. 어떤 블로거의 글 불펌..;;)
http://blog.naver.com/halmi?Redirect=Log&logNo=40003668711
를 흥미있게 붙여봤던 팬으로서
한창 신나게 얘기하는데 이이상 시크한척(?) 못하겠음.
자 기대 만빵인 다음편 주제 ㄱㄱㅅ~ -
안량에 대한 평가는 심하게 과대평가된듯 하네요. 일단 평가라는게 조조측에서 이야기된 평만을 가지고 따졌다는 점인데요. 만약에 손견이라던가 다른 쪽이면 모를까 조조측에서 나온 평만을 믿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조조군에서 기본 서술되 맹장중에 안량시절에 전위와 허저가 있긴하지만 사실상 안량과 전위 허저의 기록은 여타 맹장중에서 그 기록의 함량 자체가 미달이라고 봐야 합니다.
실상 조조의 성향을 살펴보면 조조가 관우를 찬탄하는것과 조운이 아두를 안고 달리는 장면 장판파에서 장비상대하는것 마초의 서량군과 겨루는 장면 여포와 겨루는 장면등에서 보면 조조가 휘하장수를 못믿은것이지 아니면 휘하장수들 자체가 용맹이 떨어졌던것이지(아마 둘다일거라고 생각합니다) 대체로 외부 맹장들에 대한 평가가 높은 편입니다.
또한 일기토를 최대한 피하는 모습등을 보면 확신이 없는 전투에서 돌발변수를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이 한몫했다고 봅니다.
실제 전위나 허저의 기록또한 제대로 된 전장에서의 싸움이 아니라 대체로 야습이라던가 대패상황등 난전에서의 용맹이 주가된다는것은 나름 의미심장하다고 봅니다.
즉 조조휘하장수들의 단순 무력은 평할 기회자체가 적고 또한 난전등 특수 상황이 많다는 점에서 보면 조조가 관우를 안량대항마로 내세운것 자체가 대단히 이례적인 상황에 가깝습니다.
즉 조조 생각에 관우는 확실히 안량을 이긴다는 평이었지않나 싶습니다.
또한 안량이 관우를 상대로 방심했다는것도 말이 안되는 상상입니다.
전장터에 선 장수가 일기토 상황에서 적장에 의문점이 있더라도 멍하니 당한다는것은 아무리 호의적으로 생각해도 불가하다고 봅니다.
즉 제 글의 요지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조조는 대체로 상대편 맹장에 대한평이 후하다. 아마도 자기편 맹장에 대한 의구심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실제 허저나 전위는 단순 맹장이었을뿐이지 아주 좋은 대우를 받은 장수라기엔 미흡합니다.
2.관우의 무명이 무명소졸도 아니고 일기토상황에서 안량이 방심했다는것은 어불성설이다.
3.실제 안량의 실전 기록자체가 대단히 희귀하다. 즉 조앙과 황충이 기록이 없어서 평하기가 그렇다면 안량역시 별로 다를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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